배우자 선택하기
모든 이성을 자로 잰 듯이 똑같은 정도로 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서나 어떤 사람들은 배우자로 선호되고, 어떤 사람들은 기피된다. 우리의 성적 욕망은 다른 것들에 대한 욕망이 생겨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생겨났다.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하는 생존 상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인간이 입에 집어넣을 수 있는 종류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하다. 딸기류, 나무 열매, 견과류, 고기, 흙, 돌, 독초, 나뭇가지, 배설물 등등. 만약 우리가 맛에 대한 어떤 선호도 없이 주변에 보이는 대로 아무거나 먹어 댔다고 가정해 보자. 어떤 이들은 순전히 우연에 의해 잘 익은 과일이나 신선한 견과류, 그리고 높은 열량과 영양분을 가져다주는 다른 음식물들을 섭취했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역시 우연에 의해 썩은 고기나 상한 과일, 그리고 독초를 먹었을 것이다. 양분이 많은 물질을 선호했던 이들만이 살아남아서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
음식에 대한 우리의 선호는 이러한 진화 과정을 잘 입증해 준다. 우리는 지방, 당분, 단백질, 염분 등이 풍부한 물질을 대단히 좋아하는 반면 쓰거나 시고 유독한 물질에는 고개를 젓는다. 이러한 음식 선호는 생존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준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이러한 선호를 지니고 있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 조상들의 중대한 적응적 문제를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베짜기새는 배우자에 대한 선호가 진화하였다. 수컷 베짜기새는 암컷을 발견하면, 둥지 바닥에 거꾸로 매달려 요란스럽게 날개를 퍼덕거리며 자기가 막 지은 둥지를 광고한다. 수컷이 이 일차 관문을 일단 통과하면, 암컷은 둥지 안에 직접 들어가서 길게는 10여 분간 둥지 내벽을 이리저리 찔러 보거나 잡아당겨 보면서 둥지가 잘 지어졌는지 검사한다. 암컷이 이렇게 둥지를 검사하고 있는 동안 수컷은 옆에서 암컷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이 과정에서 둥지가 암컷의 합격 기준에 못 미친다고 판단되면 암컷은 언제라도 둥지를 버리고 다른 수컷의 둥지를 찾아 곧바로 날아가 버린다.
훌륭한 둥지를 지을 수 있는 수컷을 배우자로 선호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암컷 베짜기새들은 장차 낳을 자식들을 보호하고 잘 키워 내야 한다는 적응적 문제를 해결한다. 이러한 배우자 선호가 진화한 까닭은 어떤 특정한 선호도 없이 주변에 돌아다니는 수컷들과 되는 대로 짝짓기한 암컷들보다 이런 배우자 선호를 가진 암컷들이 번식상의 이득을 보았기 때문이다.
베짜기새처럼 여성도 바람직한 ‘둥지’를 가진 남성을 더 선호한다. 진화의 역사를 통해서 여성들이 풀어야 했던 문제 하나를 생각해보자. 바로 장기적인 애정 관계에 기꺼이 헌신할 자세가 되어 있는 남성을 택하는 것이다. 경박스럽고 충동적이며 바람둥이에다가 오래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는 남성을 택했던 여성은 다른 남성을 맞이했더라면 마땅히 제공받았을 도움이나 자원,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한 채 혼자서 자식을 키워야 했을 것이다. 반면에 아내에게 헌신하는 믿음직스러운 남성을 배우자로 택했던 여성은 좀 더 쉽게 여러 자식들을 낳아서 잘 길러 냈을 것이다. 수천 세대에 걸쳐서 아내에게 헌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꺼이 그럴 의향이 있는 남성을 배우자로 선호하는 경향이 인간 여성들 사이에 진화하였다. 훌륭한 둥지를 짓는 수컷을 선호하는 경향이 베짜기새에서 진화했듯이 말이다. 특정한 음식에 대한 선호가 생존 상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했듯이, 배우자에 대한 이러한 선호는 번식 상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배우자 유혹하기
바람직한 특질을 빠지지 않고 모두 소유한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 깊은 골짜기 아래에 무성하게 열린 잘 익은 딸기를 힐끔거리는 것만으로는 딸기를 입에 집어넣을 수 없듯이, 매력적인 배우자를 가려내는 것만으로는 성공적인 짝짓기에 도달할 수 없다.
캘리포니아 해안에 있는 바다코끼리 수컷들은 교미기에 접어들면 날카로운 어금니를 부딪혀 가며 다른 경쟁자 수컷과 머리가 터지도록 싸운다. 이 처절하고 치열한 전투는 종종 밤낮을 이어 가며 계속된다. 패자는 이 냉혹한 싸움의 제물이 되어 해변가에 찢기고 상처 입은 채 내동댕이쳐진다. 하지만 승자가 할 일은 아직 남아 있다. 승자는 대략 10마리 이상의 암컷을 거느린 자신의 하렘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위세를 과시한다. 이 우위 수컷은 밖을 기웃거리는 암컷들을 다시 자기 하렘으로 몰아넣고 안에 몰래 숨어들어 교미하려는 수컷들을 내쫓아가면서 중요한 교미기에 자기의 위치를 탄탄히 지킨다.
바다코끼리 암컷들은 승자와의 짝짓기를 선호하며 따라서 자기 딸들에게도 이러한 선호를 지정하는 유전자를 물려준다. 또한 더 크고 강한 승자를 택함에 따라 동시에 자기 아들들에게도 큰 몸집과 뛰어난 싸움 실력을 지정하는 유전자를 물려주게 된다. 작고 약하고 겁 많은 수컷들은 아예 교미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진화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것이다. 겨우 5퍼센트의 수컷들이 85퍼센트의 암컷들을 독점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매우 강력한 선택압이 작용한다.
인간의 짝짓기 행동은 바다코끼리와는 매우 다르다. 예를 들어 바다코끼리 수컷 가운데 겨우 5퍼센트가 85퍼센트의 암컷들과 교미하지만, 인간에서는 90퍼센트 이상의 남성들이 생애 어느 시점에선가 자기 배우자를 찾는다. 바다코끼리 수컷들은 암컷들로 이루어진 하렘을 독점하려고 애쓰며 그 승자는 기껏해야 한두 계절에 걸쳐 하렘을 차지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몇 년 혹은 몇십 년 동안 지속되는 애정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인간 남성과 바다코끼리 수컷 모두 공유하는 핵심 특질이 있다. 둘 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는 점이다. 암컷을 끌어들이지 못한 수컷은 짝짓기에서 밀려날 위험에 처한다.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용되는 전략들은 종종 이성 배우자의 선호에 의거해 맞추어져 있다. 이성 배우자가 원하는 특질이 없는 사람들은 짝짓기의 무도회에서 들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위험에 처한다.
배우자 지키기
배우자를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한 적응적 문제다. 이미 내가 차지한 배우자라도 경쟁자에게는 여전히 바람직한 상대일 수 있다. 일단 배우자를 빼앗기게 되면 그동안 그를 유혹하고, 그의 환심을 사고, 그에게 헌신해 온 모든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간다. 더구나 내 배우자가 나에게서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마당에 좀 더 신선하고, 좀 더 그럴듯하고, 좀 더 아름다운 상대가 나타나서 나를 배신하게 될 수도 있다. 일단 배우자를 얻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사랑벌레로 알려진 플리시아 니악티카의 경우를 보자. 암컷을 차지하는 데 성공한 사랑 벌레 수컷은 암컷과 함께 무리를 빠져나와서 땅 위로 내려앉아 교미한다. 다른 수컷들이 암컷을 가로채 교미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수컷은 길게는 장장 사흘에 걸쳐서 암컷을 끌어안고 교미를 계속한다. 그래서 이들에게 ‘사랑 벌레’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처럼 오래 지속되는 교미는 그 자체로 배우자를 지키는 한 방편으로 기능한다. 암컷이 알을 낳을 준비가 될 때까지 암컷에 계속 달라붙어 있음으로써 사랑 벌레 수컷은 암컷이 낳는 알을 다른 수컷이 수정시키지 못하게 막는다. 번식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만약 수컷이 배우자 암컷을 지키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다른 수컷들과 힘들게 경쟁하여 마침내 암컷을 유혹해 낸 능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인간은 며칠 동안 배우자를 부둥켜안고 섹스를 계속하지는 않지만, 배우자를 붙들어 두는 것은 장기적인 애정 관계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우리의 진화적 과거에서 배우자의 성적 부정에 무관심했던 남성들은 자신이 친아버지일 가능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또한 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들에게 시간과 에너지, 노력을 투자하는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반면에 우리의 조상 여성들은 아무리 남편이 부정을 저지른다 할지라도 친어머니일 가능성이 낮아질 염려는 없었다. 내가 내 아이들의 어머니일 가능성은 언제나 100퍼센트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람둥이 남편을 둔 여성은 남편이 제공하는 자원, 헌신, 그리고 자식에 대한 투자를 상실할 위험에 처한다. 부정에 대처하기 위해 진화한 심리 전략의 하나가 바로 질투이다. 자기 배우자가 배신했을지 모른다는 신호에 불같이 반응해서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행동에 나선 조상들은 그렇지 않았던 조상들은 제치고 자연선택되었다. 즉 배우자의 부정을 방지하는 데 실패한 조상들은 낮은 번식 성공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질투는 마치 로봇처럼 기계적이니 행동을 유발하는 고정 불변의 본능이 아니다. 맥락과 환경에 지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 전략이다. 질투라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기 위해 마련된 수많은 갖가지 행동 안이 존재하며, 이들 덕분에 인간은 어떤 상황의 미묘한 느낌에 따라 탄력적으로 질투 반응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성을 보인다.
배우자 교체하기
모든 배우자들이 끝까지 서로에게 얽매여 살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때로는 차라리 배우자와 헤어지는 것이 타당한 경우도 있는데 배우자가 더 이상 도움을 주지 않거나, 관계를 거부하거나, 신체적인 학대를 가하기 시작하는 상황 등이 이에 해당된다. 경제적인 곤란이나 성적인 부정, 잔혹한 학대를 인내하면서 배우자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 한결같은 마음씨 덕분에 칭찬을 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원치 않은 배우자 곁에 끝까지 남아 있는 행위는 유전자를 후세에 성공적으로 전달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 손실을 그만 털고 정리해야 할지 잘 알았던 조상들의 후손이다.
좋은 배우자를 고르고, 유혹하고, 지키는 성 전략이 진화했듯이, 나쁜 배우자를 청산하는 능력도 우리에게 진화하였다. 이혼은 모든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보편적인 특질이다. 배우자와 결별하는 전략에는 다양한 심리 기제가 작동한다. 우리에게는 현재 배우자가 끼치는 손실이 그가 주는 이득을 상쇄할 만큼 큰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여러 방편들이 있다. 다른 잠재적인 상대들을 꼼꼼히 따져 보아 그들이 지금의 배우자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해 줄 것인지 판단한다. 다른 바람직한 상대를 성공적으로 유혹할 가능성도 살핀다. 또한 현재의 애정 관계가 깨어짐으로 해서 우리 자신, 아이들, 친척들이 입을 잠재적인 손해를 계산한다. 이 모든 정보들을 종합해서 머무를지 아니면 떠날지 최종적인 결정을 내린다.
결별은 불량한 배우자를 다루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지만, 새로운 배우자를 어떻게 구하느냐 하는 새로운 문제를 가져오기도 한다. 대부분의 포유동물처럼 인간도 오직 한 명의 배우자하고만 평생 짝짓기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종종 짝짓기 시장에 다시 들러 배우자를 선택하고, 유혹하고, 지키는 순환 고리를 되풀이한다. 그러나 결별 이후의 새 출발은 그 자체로 고유한 문제를 안고 있다. 짝짓기 시장에 다시 진입하는 사람들은 나이뿐 아니라 소유한 자산이나 부담해야 하는 책임도 각기 다르다. 처음 시장에 들어섰을 때보다 불어난 수입이나 사회적 지위는 이전에는 넘볼 수 없었던 배우자를 유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반면에 더 높아진 나이나 예전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둔 아이들은 새로운 배우자를 유인하는 데 방해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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