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서로 만나 사랑하는 행위는 참으로 기쁘고 즐거울 뿐 아니라 일상의 대화를 풍성하게 하지만, 그만큼 우리 마음을 아프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짝짓기는 이해하기 힘든 점 투성이다. 남녀는 때때로 자기 자신을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상대를 배우자로 택하기도 한다. 이성에게 접근하려는 노력은 종종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불거져 나와 서로 비난하고 상처 받는 악순환으로 치닫는다.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혼인 서약과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혼한 부부의 절반이 이혼을 겪는다.
아픔, 배신, 그리고 상실감은 흔히 사랑에 대해 품는 낭만과 크게 배치된다.
짝짓기 전 단계에 걸쳐서 갈등은 늘 일어나는 정상적인 현상이며, 단순히 예외로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여성에게 치근거리다가 거절당한 남성이 터뜨리는 울화통에서부터 집안일을 나 몰라라 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느끼는 실망감에 이르기까지 갈등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이처럼 광범위하게 스며들어 있는 남녀 간의 갈등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좀 더 심오한 무엇이, 인간 본성을 잘 드러내 주는 그 무엇이 관련되어 있는 문제다.
아직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그 무엇이.
사랑은 인간의 삶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사랑이란 감정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우리를 황홀하게 휘감고 사랑을 하지 않을 때에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통념과는 달리 사랑은 서구의 유한계급이 극히 최근에 만들어 낸 산물이 아니다.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사랑을 체험하며 사랑을 뜻하는 단어를 각자 가지고 있다. 사랑이 이렇게 보편적으로 침투해 있음을 고려하면, 상대에 대한 헌신, 다정, 열정 등을 포괄하는 이 감정이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며 누구나 손만 뻗으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동감할 것이다.
인간의 짝짓기가 지닌 모순적인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손실은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못 크다. 학문적으로는 왜 사람들은 사랑을 얻고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인생의 상당 기간을 기꺼이 희생하는가와 같이 삶의 가장 궁극적인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빈칸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는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혹은 연인과 사랑을 키워 나가는 과정에서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 쉽게 좌절하고 깊은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인류가 추구하는 진정한 사랑을 우리의 가장 소중한 대인 관계 곳곳에 깊숙이 침투해 있는 갈등과 조화시킬 필요가 있다. 요컨대 우리의 꿈을 현실에 맞춰야 한다. 이 까다로운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진화해 온 과거를 되짚어 보어야 한다. 우리의 신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 그리고 우리의 생존 전략뿐만 아니라 짝짓기 전략까지 오선지 위에 그리고 연주해 온 당사자인 진화적 과거를 말이다.
진화적 근거
1세기 훨씬 전에 찰스 다윈이 짝짓기의 미스터리에 대한 혁신적인 설명을 제시했다. 그는 동물들이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떨어뜨릴 것 같은 형질들을 종종 발달시킨다는 사실에 커다란 흥미를 느꼈다. 많은 동물들이 드러내는 화려한 깃털, 커다란 뿔, 그리고 다른 이채로운 특질들은 생존이라는 점만 놓고 보면 손해만 끼칠 것처럼 보인다. 공작의 눈부신 깃털은 스스로를 포식자들 눈에 더 잘 띄게 만들어 생존에 크게 해를 끼칠 것이 분명함에도 어떻게 진화를 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을까?
다윈이 내린 대답은 공장의 꼬리가 각 개체의 번식 성공도를 높여 주었다는 것이다. 즉 화려한 꼬리를 가진 공작 수컷들은 우수한 배우자를 얻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서 그러한 유전적 특질을 계속해서 전해줄 수 있었기 때문에 진화하였다는 것이다. 생존상의 이득이 아니라 번식상의 이득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에 어떤 형질이 선택되어 진화하는 현상을 다윈은 성선택(sexual selection)이라 이름 붙였다.
다윈에 따르면 성선택을 두 가지 형태를 띤다.
1. 동성의 개체들이 이성 배우자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할 기회를 놓고 경쟁을 벌여서 경쟁에서 이긴 개체가 더 많은 기회를 얻는 형태가 있다. 두 마리 산양이 서로 뿔을 부딪치며 싸우는 모습은 이러한 성 내 경쟁(intrasexual competition)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예이다. 성 내 경정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주는 특질들인 강한 힘, 지능, 동료들과의 친화력 등은 경쟁의 승자가 더 자주 짝짓기를 해서 더 많은 후손들에게 유전자를 전해 주게끔 도와주었기 때문에 진화하였다.
2. 하나의 성(性)에 속하는 개체들이 특정한 특질을 지닌 이성 배우자를 다른 배우자보다 더 선호한다. 이렇게 배우자로 더 자주 선택받는 개체들은 유전자를 후대에 보다 많이 남길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러한 특질들이 진화하게 된다. 선호받는 특질이 없는 동물들은 짝짓기의 향연에 초대받지 못하고 그들의 유전자는 종착점에 다다른다. 공작 암컷들이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깃털을 내보이는 수컷들을 선호했기 때문에, 변변찮은 깃털을 지닌 수컷들은 진화의 먼지 속으로 내동댕이쳐 잊혀졌다. 오늘날 공작 수컷들이 모두 눈부신 깃털을 뽐내는 까닭은 진화의 역사를 통해 공작 암컷들이 아름답고 현란한 수컷들과 짝짓기 하는 것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진화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두 가지 핵심 과정인 배우자에 대한 선호와 배우자를 얻기 위한 경쟁을 밝혀 줌으로써 짝짓기 행동을 효과적으로 설명하였다.
성선택 이론은 주류 사회 과학자들로부터 격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이론이 인간의 본성은 주로 본능적인 행동에 따라 결정되며 인간의 특별함과 유연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화와 의식(意識) 덕분에 우리 인간은 진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믿음은 계속 유지되었다.
인간의 짝짓기에 대한 연구들로부터 얻어진 발견은 여러 가지 면에서 기존의 사고를 깨뜨리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학계에 논쟁과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남성과 여성의 성 심리에 대한 표준적인 관점을 과감히 벗어버릴 때가 온 것이다.
인간의 짝짓기에 대해 발견한 사실들 가운데 대다수는 윤리적이라 볼 수 없다. 예컨대 성적인 목표를 무자비하게 추구하는 과정에서 남녀는 경쟁자를 깍아내리거나, 이성을 기만하거나, 심지어 자기 자신의 배우자를 파멸시키기도 한다.
인간의 짝짓기에서 경쟁적이고, 갈등을 유발하고, 속임수에 능한 측면은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발견이 불쾌하다고 해서 그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궁극적으로 인간 짝짓기의 불순한 측면으로 인해 생기는 가혹한 결과들을 치유하고자 한다면 그들과 맞닥뜨리는 수밖에 없다.
성 전략
전략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 다시 말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이다. 인간의 짝짓기, 연애, 섹스, 그리고 사랑을 근본적으로 전략의 일환이라 보는 관점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무작위적으로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에게나 무차별적으로 끌리지 않는다. 우리는 사랑의 경쟁자를 그저 심심해서 헐뜯지 않는다. 우리의 짝짓기는 전략에 의거하며, 이 전략은 성공적으로 짝짓기하는데 따르는 여러 특정한 문제들을 해결하게끔 설계되었다. 어떻게 사람들이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는지 이해하려면 성 전략을 분석해야 한다. 전략은 짝짓기라는 전장에서 승리하여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하다.
적응(adaptation)은 생존과 번식에 관련된 문제들을 풀기 위한 진화적 해결책이다. 수백만 년에 결친 진화를 통해서 자연선택은 체내 영양분 공급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배고픔이라는 기제를 우리 몸에 장착시켰다. 지방과 당분에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무엇을 입속에 집어넣어야 하는지(견과류와 딸기 등을 먹을 것, 흙이나 자갈은 먹지 말 것) 알게 해 주는 미뢰(味蕾), 지독한 더위나 추위를 견디게 해 주는 땀샘과 떨림 기제, 육식 동물이나 위험한 적수에 잘 대처하게끔 맞서 싸우거나 바로 도망가게 해 주는 두려움과 분노 같은 감정, 질병과 기생체에 대적하게 해주는 복잡한 면역 체계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이러한 적응들은 자연의 엄혹한 힘에 맞서서 생존하기 위해 풀어야만 했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우리 인간의 해결책이다. 즉 우리의 생존 전략인 것이다.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특질들을 갖추지 못한 조상들은 모두 살아남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성 전략은 짝짓기 문제를 풀기 위한 진화적 해결책이다. 진화 역사를 통해서 성공적으로 짝짓기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리의 조상이 되지 못했다. 오늘날의 우리 모두는 바람직한 배우자를 얻기 위해 동성 간에 벌어지는 경쟁에서 승리하고, 번식 가치가 높은 배우자를 유혹하고, 그와 함께 실제로 자식을 낳고, 자기 배우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동성 경쟁자를 잘 물리치고, 번식 성공을 거두는데 장애가 되었을 다른 문제들까지 잘 해결해 냈던 조상들의 길고 끊임없는 대열에서 나온 후손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성공담을 물려받아 지니고 있다.
각각의 성 전략은 바람직한 배우자를 판별해 내거나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고서 그러한 배우자를 차지하는 것 같은 특정한 적응적 문제들에 꼭 맞추어져 있다. 각 전략에는 특정한 배우자에 대한 선호, 사랑의 감정, 섹스에 대한 욕망, 질투 등의 심리 기제가 밑바탕으로 깔려 있다. 이 심리 기제들은 신체적 특질, 성적 관심의 표시, 배우자의 부정(不貞)에 대한 낌새 등 외부 세계로부터 받는 정보나 단서에 따라 민감하게 작동한다. 이들은 일정한 정도의 배우자 가치를 지닌 이성을 실제로 유혹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느냐처럼 우리 자신에 대한 정보에 의해서도 민감하게 작동한다.
성 전략이라는 용어가 짝짓기 문제를 푸는 해결책들을 생각해 보기 위한 쓸모 있는 은유이기는 하지만, 모든 성 전략이 의식적으로 의도된 행위라는 잘못된 인식을 줄 수도 있다. 성 전략은 의식적인 계획이나 지각을 요구하지 않는다. 땀샘은 체온 조절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지만 우리가 그 목표를 의식적으로 계획했거나 알고 있기 때문에 땀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사실 피아노 연주자가 자기의 손놀림을 갑자기 의식하게 되면 오히려 연주를 망치기 쉽듯이, 대부분의 성 전략들은 무엇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을 때 그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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